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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아 요리사들, 전통을 모던하게 재해석하다: 트빌리시 셰프 5인

트빌리시 모던 조지아 레스토랑의 플레이팅된 디쉬 — 장식된 접시 위에 놓인 조지아 전통 음식의 현대적 해석

트빌리시 구시가지 자갈길을 따라 걷다 보면, 19세기 석조 건물 1층에 자리한 식당 간판에서 한국에는 없는 단어가 눈에 띈다. Supra(수프라)Modi(모디)는 조지아 요리사가 자기 음식을 부르는 두 가지 다른 말이다. 전자는 수백 년 된 전통 방식 그대로의 요리, 후자는 그 전통을 오늘날 재료와 기법으로 다시 읽은 요리다. 최근 10여 년간 트빌리시에서는 이 두 단어를 동시에 다루는 셰프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번 글에서는 전통을 모던하게 재해석하는 조지아 요리사들의 세계로 들어가본다. 누가, 어떤 방식으로, 왜 조지아 요리를 새로 쓰고 있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여행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다룬다. 비슷한 흐름은 BBC Travel의 음식 문화 시리즈에서도 반복적으로 다뤄지고 있으며, 동유럽 요리의 부상은 조지아에 그치지 않고 Georgian cuisine 위키백과 항목에서도 비중 있게 다루어진다.

왜 지금 조지아 요리사들이 전통을 다시 쓰기 시작했나

2010년대 중반부터 조지아 음식의 위상이 달라졌다. 2013년 크베브리(Qvevri) 양조법이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것을 시작으로, 조지아 와인과 식문화가 국제적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조지아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 산지 중 하나로, 8,000년 역량의 양조 전통을 갖고 있다. 출처: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List

이 시기에 많은 조지아인 셰프들이 런던, 파리, 뉴욕에서 일한 뒤 트빌리시로 돌아왔다. 그들은 외부의 미각 기준을 들여오면서도, 할머니의 부엌에서 먹던 맛을 잃지 않으려는 욕구를 안고 돌아왔다. 그 결과가 바로 ‘Modi’라는 이름의 요리들이다.

  • 전통의 재발견: 지방 마을의 멸실 위기에 처한 레시피를 도시로 가져옴
  • 기법의 현대화: 저온 조리, 분자 요리, 플레이팅을 조지아 토속 재료에 적용
  • 접근성의 확장: 카르툼(Cartou)라는 팝업 문화로 젊은 손님층을 끌어들임

트빌리시에서 만날 수 있는 대표 셰프와 식당

트빌리시 구시가지의 자갈길과 19세기 석조 건물 — 모던 조지아 레스토랑이 들어서 있는 거리 풍경

트빌리시 구시가지와 솔라키(Sololaki) 지구에는 전통을 모던하게 풀어낸 식당들이 몰려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셰프가 직접 시장에 나가 재료를 고르고, 그날의 농산물에 따라 메뉴가 바뀐다는 점이다.

1) Keto Karkia와 Keto Karkia’s Restaurant

텍우나 가체칠라제(Tekuna Gachechiladze) 셰프는 조지아에서 가장 잘 알려진 여성 셰프 중 한 명이다. 그녀는 트빌리시에 본점을 둔 레스토랑 체인을 운영하며, 카르툼 지역 요리를 현대적인 플레이팅으로 풀어낸다. 그녀가 가장 자주 인용하는 원칙은 “조지아 식탁에는 항상 다섯 가지 색깔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2) Shavi Lomi (검은 사자)

솔라키 거리의 한적한 골목에 자리한 이 식당은 위스키 양조장에서 시작한 브루어리 출신 셰프가 운영한다. 2010년경 개점한 이래, 조지아 가정식의 핵심인 로비오(Lobio, 콩 스튜)치킨탈리(Chikhirtma, 닭고기 수프)를 현대적으로 재구성해왔다. 식당 건물 자체가 19세기 후반 건축물이라 벽돌 천장과 나무 기둥이 그대로 남아 있다.

3) Barbarestan

1904년에 발간된 바바레 조르다네즈(Barbare Eristavi-Jordanidze)의 요리책을 1차 자료로 활용해 모든 메뉴를 재구성한 식당이다. 셰프는 책에 적힌 19세기 가정식 레시피를 그대로 따르면서도 플레이팅과 와인 페어링은 현대식으로 다듬었다. 결과적으로 한 번도 읽어본 적 없는 조지아 가정식의 역사가 식탁 위에 펼쳐진다.

이 밖에도 트빌리시에는 Gabriadze Theatre 카페(마리오네트 극장 안에 있는 작은 식당), Stamba Hotel의 레스토랑, Zakaria Restaurant 등 전통과 현대를 잇는 다양한 공간이 있다. 출처: 조지아 관광청 공식 가이드 (visitgeorgia.ge)

전통 재해석의 세 가지 방식

조지아의 젊은 셰프들이 전통을 다루는 방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1. 재료는 그대로, 기법만 현대화: 로비오에 사용되는 적색 콩, 자지카(Jajika, 잣), 호두는 그대로 두되 조리 시간과 온도만 조정한다. 이를테면 12시간 저온 조리로 콩의 전분을 살린다.
  2. 기법은 그대로, 재료만 재해석: 전통적인 차슈(Chashush) 샐러드(오이, 호두, 마늘)에 비트루트나 무화과를 더해 단맛과 색감을 더한다.
  3. 둘 다 재해석: 아드자룰리 하차푸리(Adjaruli Khachapuri, 배 모양 빵) 위에 모차렐라 대신 조지아 전통치즈 이메레티(Imeruli)술구니(Sulguni)를 섞어 풍미를 깊게 한다.

이 세 방식 모두 한 가지 원칙을 따른다. 손님이 한 입 먹었을 때 “이건 조지아 음식이야”라는 확신이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 확신이 온 뒤에야 현대적 요소가 더해질 자격이 생긴다는 것이 이 셰프들의 공통된 철학이다.

여행자를 위한 실용 가이드

트빌리시 식탁 위에 놓인 전통 조지아 요리와 와인 한 잔 — 여행자가 한 끼 식사로 만나는 모던 조지아 음식의 모습

조지아를 여행하면서 이런 모던 조지아 음식을 맛보려면 다음 사항을 참고하면 좋다.

  • 예약은 주중에도 필수: 트빌리시의 인기는 식당 자리도 예외가 아니다. 인기 있는 식당은 주말 1주일 전에 예약이 끝나기도 한다. 트빌리시 시간으로 평일 저녁 8시 이후가 가장 붐빈다.
  • 1인 평균 예산: 모던 레스토랑 기준 메인 코스 1개, 와인 1잔, 전채 1개로 1인당 약 60~80 조지아 라리(GEL). 환율 1 GEL ≈ 577 KRW 기준, 약 35,000~46,000원 수준이다. 출처: 조지아 국립은행(NBG) 2026년 6월 환율 (Xe.com 교차 검증)
  • 메뉴판 읽는 법: 조지아어 메뉴판이 기본이다. khachapuri(치즈빵), khinkali(만두), badrijani(가지요리), tskharishveli(트러플) 단어를 기억해두면 편하다.
  • 팁 문화: 서비스 요금은 보통 청구서에 포함되지 않는다. 만족스러웠다면 10% 정도를 추가하는 것이 관례다.
  • 채식 옵션: 조지아 요리는 의외로 채식 친화적이다.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 badrijani nigvzit(가지 롤), lobio(콩 스튜), pkhali(시금치/비트 전채)을 채식 버전으로 제공한다.

트빌리시 음식 투어 코스 제안

하루 동안 트빌리시 구시가지와 솔라키 일대를 도보로 돌면서 4~5군데를 들를 수 있다. 시작은 리케 거리(Leselidze Street)의 바바레스탄에서 점심을 먹고, 디저트는 두넬리(Dunneli)에서 처케라(Churchkhela, 호두 과자)를 사서 거리의 벤치에서 먹는다. 오후에는 솔라키 지구의 샤비 로미로 가서 한 잔의 차차(Chacha, 포도주 증류주)와 함께 저녁 전채를 즐긴다.

이렇게 구시가지와 솔라키를 잇는 도보 30분 코스는 조지아 음식의 과거와 현재를 한꺼번에 맛보는 가장 효율적인 동선이다. 중간중간 자갈길에 앉아 천천히 와인을 마시는 시간을 두는 것이 핵심이다. 조지아에서는 이 시간을 სუფრა (Supra, 식탁 모임)라고 부르며, 음식만큼 이 시간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과의 대화도 여행의 중요한 부분이다.

전통을 재해석한다는 것의 의미

마지막으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점이 있다. 이 셰프들이 전통을 재해석한다는 것은 단순히 비주류를 좇는 유행이 아니다. 조지아는 1921년부터 1991년까지 70년간 소비에트 연방의 일부였고, 이 기간 동안 일부 지역 요리와 가정식 레시피가 거의 소실되었다. 독립 이후 조지아는 이 유산을 복원하는 국가적 프로젝트를 진행해왔다. 관련 맥락은 조지아 문화 위키백과 항목에서도 자세히 다룬다.

이 맥락에서 모던 조지아 요리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한다. 첫째, 사라져가는 가정식 레시피를 도시 식당 차원에서 기록·보존한다. 둘째, 그 레시피를 21세기 손님에게 전달할 수 있는 형태로 다시 쓴다. 여행자가 한 끼 식사를 하면서도 동시에 조지아 식문화의 보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는 셈이다.

트빌리시에서 한 끼를 할 때, 그 접시 뒤에 어떤 셰프가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면 여행이 한층 깊어질 것이다. 음식은 그 나라의 역사를 가장 맛있게 읽는 방법이다.

출처: UNESCO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List, 조지아 관광청 공식 사이트(visitgeorgia.ge), 조지아 국립은행(NBG) 환율 공시

조지아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트빌리시의 음식 일정도 미리 짜두는 것을 권한다. 위 식당들은 사장님이 직접 운영하는 곳이라 이메일로 문의하면 여행 일정과 취향에 맞춘 코스를 제안받기도 한다. 자세한 예약은 각 식당 공식 웹사이트나 이메일로 문의하면 된다.